망자의 한을 달래며
바뀐 시신의 값은 얼마인가

내가 법관으로서 망자(亡者)의 한(恨)을 실감나게 다룬 재판이 있었다. 진주법원에서 부장판사로 근무할 때 참으로 기막힌 사건을 하나 재판한 적이 있다. 병원 영안실 직원의 실수로 원고들의 어머니 시신이 다른 상가 남자 시신과 뒤바뀐 사건이다. 두 상가의 성씨가 같아 담당 직원이 관에 씌워진 관보만 보고 관을 바꿔 내준 탓이다. 상주(喪主)의 꿈자리가 뒤숭숭하여 돌아가신 아버지 산소 옆에 안장하기 직전에 관을 열어 보니 시신이 바뀐 것을 발견하고 그날 그 병원 영안실에서 나간 시신 6구 중 매장된 4구를 밤중에 파헤쳐 보았으나 거기에는 없었다. 나머지 2구는 이미 화장된 뒤였다. 그런데 유전자 감식을 해도 그 화장된 2구 중 어느 것이 원고들의 어머니의 것인지 밝힐 수 없다. 어머니를 두 번 잃은 격이 된 유족들은 병원을 상대로 5억 원의 위자료청구소송을 제기했다. 어찌 유족들의 그 슬픔과 정신적 고통을 돈으로 계산할 수 있을까? 그런데 야속하게도 우리 민법 제394조8)에는 「금전배상의 원칙」이 정해져 있어 법관은 그것을 계산해 내야 한다. 배석판사들과 합의(合議)를 거쳐 위자료 액수를 일단 보통 사람이 죽었을 때의 당시 위자료 액수와 동일한 5천만 원으로 정한 다음, 그것으로 도저히 위로받을 수 없는 유족들의 슬픔은 판결문으로 달래주기로 하였다. 돈 5천만 원으로야 부족하겠지만, 판결문을 읽고 그것으로 위로를 받는다면 이 또한 그들의 눈물을 닦아주는 판사의 임무가 아니겠는가? 그래서 고심 끝에 판결문에다 다음과 같이 위로의 말씀을 적었다. “인간이면 누구나 그 육체적 생명이 다하면 결국 한 줌 흙으로 돌아가거나 한 움큼의 재가 되어 흩어져 버릴지라도, 낳아주고 길러주신 어버이가 돌아가시면 흔히 자식 된 당연한 도리로 그야말로 하늘이 무너져 내리는 슬픔을 가눌 길 없는 그 와중에서도 양지 바른 명당을 찾아서 산소를 곱게 쓴 다음 그 곳에 평안히 잠들게 하고 때가 되면 산소를 찾아가 살아생전의 어버이를 추앙하며 성묘하는 오랜 조선숭상(祖先崇尙)의 풍습이 아직도 우리나라에서 지배적인 양속(良俗)으로 자리 잡고 있는 현실에 비추어 보면, 특히 화장(火葬)이 아닌 매장(埋葬)의 방식으로 장사(葬事)를 치르기로 결정하고 그것도 이미 돌아가신 선고(先考)와 합분하려고까지 계획하였던 이 사건에 있어서, 영안실에서 선비(先妣)의 시신이 다른 상가의 남자 시신과 뒤바뀌었고 장사 직전에야 그 사실을 발견하고 혼비백산(魂飛魄散)하여 어머니의 시신을 찾아 헤맸으나 그 때는 이미 다른 상가의 장사방식에 따라 화장되어 버리고 이제는 어머니의 유골조차 수습할 길이 없어진 원고들로서는 어머니 돌아가신 후에 다시 씻을 수 없는 불효를 저질렀다는 자책감과 허탈감 때문에 망연자실(茫然自失)할 수밖에 없어, 이는 가령 사람이 비명(非命)에 죽었을 때 느꼈을 것에 버금가는 엄청난 정신적 충격과 고통으로 다가와 어머니를 여윈 슬픔이 배가(倍加)되었을 것으로 보인다." 물론 이 정도의 판결문을 가지고 유족들이 위로받았는지 여부는 확인해볼 도리가 없지만, 적어도 법관으로서는 그렇게라도 유족들의 눈물을 닦아주려고 노력한 것으로 만족해야 했다. 그러나 나의 판결은 어느 쪽도 만족시키지 못하였고, 양쪽 모두 불복하여 항소(抗訴)하였다. 나중에 부산고등법원은 오늘날 화장이 늘어나는 추세라고 하면서 위자료를 3,500만 원으로 낮추었고, 그 판결은 대법원에서 확정되었다. 이 사건은 너무나 인상에 깊이 남아 있어,2001년 11월 14일에 진주에 있는 국립경상대학교에 초청받아 법대 학생들을 상대로, ‘우리나라 법치의 현실과 미래’라는 제목으로 특강을 할 때도 법관의 고민을 알리려고 소개해 준 바 있고, 판결문 전문이 법률신문에 실리기도 하였다.

 

 


8) 민법 제394조 : 다른 의사표시가 없으면 손해는 금전으로 배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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